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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EULJ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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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스터 파라다이스, 을지로

요즘 소위 뜬다는 연트럴파크(연남동+센트럴파크)도, 망리단길(망원동+경리단길)도 아닌 을지로라는 지명에 잠시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을지로는 유행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낡은 도심의 흔하디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목말라 있는 힙스터들은 낡은 건물과 공구 상가, 각종 제조 공장, 시장이 복잡하게 뒤얽힌 이곳의 미 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을지로1가부터 7가에 이르는 화려한 대로변에서 한 발짝만 물러나도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초고층 빌딩 뒤안길에는 1980년대에 호황을 누렸던 도시가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조용히 낡아가고 있는 중이다.

타일이 군데군데 깨져버린 건물 외관과 가파른 계단, 색 바랜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는 철 물점,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인쇄 기계, 멀리서부터 누린내가 풍기는 50년 넘은 국밥집까지 일년 도채안돼 순식간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며 완전히 얼굴이 달라지기 십상인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다.

 

숨어 있는 오아시스

낡음이 일상이 된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건 바로 곳곳에 들어선 이색 공간들이다.

다만 이런 공간을 만 나려면 찾아다니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가게 들은 간판이 아예 없거나 종이에 손수 써 붙인 정도가 전 부다.

이런 곳에도 가게가 있을까 싶은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심지어 유리문도 아닌 철문이 굳게 닫혀 있 다. 큰 맘 먹고 문을 열면 그때부터는 별천지로 직행이다.

침대가 없는 호텔, 한약 대신 커피를 파는 한약방, 마왕 신해철이 떠오르고 마는 '도시인이라는 이름의 바, 주인 마음대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서점, 우주 만물을 죄다 판다는(실은 주인이 가진 모든 것을 파는 것 같다) 소품 가게, 주말에만 방문 가능한 레코드 숍까지, 오히려 알려질까봐 두려운 보석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다만 이 곳에서는 어느덧 일상처럼 여겨지는 과도한 친절이나 서비스를 바라지는 말자.

아티스트와 겸업하는 것이 대부분인 이곳 주인장들은 상업적인 마인드 대신 순전히 '좋아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많은 가게들이 작업실로도 쓰이고 있으므로, 그들의 작품 활동을 엿보는 재미는 덤이다.

 

을지로, 예술로 꽃피다

한때 '도면을 들고 가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 떠돌던 을지로, 특히 을지로3가부터 4가, 청계천 수표교부터 관수교까지 1km에 이르는 거리는 수십 년간 제조와 유통이 결합한 물류기지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이곳의 터줏대감들은 대학 졸업 작품부터 예술가의 설치 작품, 매 장 디스플레이용 집기까지 못 만드는 게 없다고 봐도 좋다.

이러한 특성에 착안해, 지금 을지로에서는 구청 차원 에서 청년 예술가 지원 사업을 활발하게 시도하는 중이 다. 특히 세운상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의 이주 행렬이 눈에 띈다.

텅 비었던 상가를 작업실이 필요한 젊은 아티스트에게 월 2만원부터 25만원이라는 파격적 가격으로 임대해 새로운 예술 공간으로 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작업 공간을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인근에서 모두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금상첨화다.

까다로운 작품 제작도 노련한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작업실의 이름은 '200/20(보 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 '300/80(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80만원). 갤러리를 겸하는 이들 공간은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렇게 재기넘치는 동네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나면, 더 이상 촌스러움이라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을지로 재창조'는 그렇게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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