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는 더 이상 신비의 동양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그같은 실감은 남경로 이제는 더 이상 인민공원이 되어 버린 옛 영국 조계지의 경마장을 지나 하늘을 덮은 플라타너스 잎새로 햇빛이 반짝거리는 나뭇잎 터널을 통과하여 지금은 그저 후아이하이 중로로 불리는 옛 프랑스 조계지의 중심부였던 조프레 가의 천정이 둥근 정자에 이르는 길을 따라 긴 드라이브에 탐닉하리라고 기대했던 나의 코 끝에 충격으로 전달되었었다.
상해 도처에 있는 어느 인민공장에서 제작된 고물 세단 승용차는 조그만 벽돌 저택의 목제 대문 앞에 멈췄다. 문옆에 한문으로 씌어진 문패가 걸려 있었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붉은 견장이 달린 누리끼리한 제복을 입은 한 젊은 인민해방군 병사의 졸리운 얼굴이 나타났다. 턱수염이 덥수룩한 눈이 큰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챈 순간 그의 얼굴에서 멍청한 표정은 일시에 사라졌다.
20년간의 호전성이 보초가 갖는 특유의 의심과 함께 번뜩였다.
그는 마지못해 하는 듯한 상해식 귀엣말로 이 집 문패앞에 선명히 씌어있는 대로 한때 송경령 부주석의 사저였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나는 들어가도록 허용되지 않았다. 그 저택은 지금 원로 당관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 대신 잘 가꾸어진 정원을 잠시 산책이나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내심으로 그곳에서 크로케이공이 굴러가는 소리와 키가 작달막한 의사였던 손문의 1920년대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경비병은 눈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천천히 가로 흔들었다. 실망한 나는 숲과 꽃, 훌륭한 솜씨의 추녀끝, 여닫이 창문이 들어가던 모습 등 기억을 더듬으며, 또 뒤틀린 옛날 시종들의 숙소였던 곳에서 들려오는 아련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경비병의 어깨 너머로 집안을 찬찬히 훔쳐봤다. 경비병은 나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그의 어깨를 끌어 올렸다.
내가 찾으려고 하는 것은 지난 50년 동안 거기에 없었던 것이라고 병사에게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 장소 하나를 제외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거기에 남아 있지 않았다. 6백 68개의 사창굴이 있었던 범죄의 소굴이었던 옛 상해는 사라졌다.
호상들이 스텡가 위스키를 홀짝거리거나 일본 점령군들이 키 작은 장교들이 앉을 수 있도록 책상과 의자의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우명한 롱 바가들이 있던 옛 브리티시클럽은 선원 여관이 돼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상해의 유령이 어디엔가 떠들고 있으리라는 확신아래 그것을 찾아 나섰다. 아직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중화로 주변의 성벽이 둘러쳐진 마을인 옛 시가지일 것이다. 그곳은 매우 조용했다, 1세기 전 아니 반세기 전만 해도 나는 그 좁은 골목길을 그처럼 태평스럽게 걸을 수 없었으리라.
옛적에 그 거리는 팔꿈치를 맞부딪히는 사람, 끊임없이 가래침을 뱉는 사람, 상처 난 원숭이처럼 빈민굴에 드러누워 있는 거지들로 가득 차있다. 몇 푼만 주면 아홉 살 난 소녀를 사서 한 시간 동안 못된 짓을 할 수 있었는가 하면 좀도둑에게는 다시 도둑질을 못하도록 어깨죽지에 식칼을 꽂았다.
그러나 옛날의 냄새는 거기에 없었고 유령 역시 없었다. 구시가지조차 깨끗하고, 가지런하고, 건전하고, 매력적이며 위험이 없도록 정돈되어 있었다.
나는 리용이나 맨체스터, 혹은 오마하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것 외에 상해 사람들은 보다 친절했다. 60년대 중국 대륙을 휩쓸었던 홍위병들도 가 버렸다. 당시 홍위병들은 상해 거리에서 외국 외교관들에게 주먹을 가했으며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들의 머리에 바보에게 씌우는 원뿔모자를 씌워 북경 체육관으로 끌어내 모택동 주석에 대한 반역 사실을 자백하게 했다.
뿔모자를 쓴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전 공안부장 로장군은 자백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한 때 조지오웰의 예언을 실현하자고 설교를 하였으나 오히려 스스로 그 예언의 희생자가 되었던 것이다.
모택동의 처 강청과 4인방이 사주한 바로 그 신경질적인 폭도들이 송경령 부주석이 손문과 눈이 맞아 집을 뛰쳐나가기 전 소녀시절까지 살았고, 공산당이 승리한 후 노후에 살 곳으로 그녀가 취득한 조프레 가에 있는 아름딥고 작은 그녀의 저택을 유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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