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8) 썸네일형 리스트형 김수로왕 건국신화 가야의 건국을 전하는 사료로는 김수로왕 신화가 유일하다. 이 신화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하고 있는데 설화적이며 후대에 윤색이 가해져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하지만 모든 신화나 설화는 일정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기에 김수로왕신화에도 신비의 왕국 가야사의 실체를 해명해줄 사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해에는 현재까지 건국신화와 관련된 유물과 유적지들이 남아 있는데 구지봉, 수로왕릉의 쌍어문, 파사석탑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구지봉은 가락국 시조의 수로왕이 하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은 허황후릉 서쪽 얕은 구릉 선단부로서 거북이 머리를 내민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구지봉에는 가락국의 건국신화를 형상화한 석조물을 설치해 두었는데, 여섯.. 기마민족 이동설의 논란이 된 대성동 고분군 일제시대 이후로 김해지역에 있는 패총이나 무덤에 대한 조사가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중심 고분군이 아니어서 김해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성동 고분군이 발굴됨으로써 전기 가야의 맹주였던 금관 가야에 대한 진정한 접근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김해 대성동 고분의 발굴로 우리 고대사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4세기대에 이미 금관가야에 강력한 왕권이 세워져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고분에서 발굴된 갑옷, 방패 등과 각종 공구류 등은 같은 시기 일본에서 발견된 것보다 뛰어나고 시기가 앞선 것들이어서 고대 일본이 김해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부지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임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고분군은 1세기 전후부터 5세기까지 구지로의 낮은 곳에서 정상부를 향하여 지석묘,..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을 폭로한 복천동 고분군 해방 이후 가야지역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한 동안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부산, 김해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발굴조사한 가장 중요한 고분으로 부산 복천동 고분군이 있다. 복천동 고분군은 현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져 125기 이상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복천동 고분군은 낙동강 하류 동안에서 확인된 가야 지배층의 유일한 고분군이라는 점에서 1차 발굴때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당시만 해도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할 만한 유물이 거의 없었는데 복천동 고분군에서 1차 발굴때부터 쏟아져 나온 철제 갑주류, 토기류,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들은 일본 것보다 시기가 빠르고 뛰어나서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복천동 고분군은 구릉.. 이전 1 ··· 45 46 47 48 49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