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48) 썸네일형 리스트형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발굴 시작 거대한 고분군들은 대부분 지배계급의 것으로 피장자의 지위나 피장자가 속해 있던 시대의 사회상도 반영하고 있다. 거대한 고분에 묻혀있는 지배층들은 죽음을 현실세계의 연장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세계에서 누리던 우월한 지위가 죽어서도 유지되기를 바랬다. 이들의 무덤에는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들이며, 순전히 껴묻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수 백개의 도기들이 묻혀있다. 심지어는 자신의 시종이나 노예들을 강제로 순장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는 무덤의 주인공이 저승에서도 아무런 불편없이 살기를 바라는 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이리하여 엄청난 노동력과 재부를 쏟아부은 무덤들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무덤이 만주 통구에 있는 고구려 장수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장군총이다. 화강암을 계단식으로 네모나게 7층으로 쌓아올렸는데 맨 아래층.. 고분 발굴로 신비의 베일을 벗은 가야왕국 고분 발굴로 신비의 베일을 벗은 가야왕국 가야시대의 고분들이 대부분 도굴되어 원형을 잃어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비밀에 싸인 왕국 가야는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고분들이 발굴되면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야시대의 고분으로 추정되는 무덤들에서 금동관 및 화려한 장신구들, 철제 무기류, 철정 등이 발굴됨으로써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가야는 자체의 역사 기록도 없고, 한국 고대사 연구의 기존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삼국사기에서도 본기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어 그 실체를 알기 힘들었다. 특히 일본서기에서는 가야를 자주적인 국가가 아닌 왜에 조공이나 바친 부용집단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임나일본부설의 진원지로 둔갑시켜 가야의 실체를.. 도굴꾼들에 의해 발견된 창원 다호리 유적 1985년 무렵 대구와 서울의 골동상에는 그 동안 별로 발견된 적이 없던 화려한 청동기, 철기와 토기가 나돌아 다니고 있었다. 골동상들은 경상도 모처의 유적에서 나온 진품이라 했지만 노련한 도굴꾼들조차도 진품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유물들이었다. 그러자 도굴꾼들은 제값을 받을 생각으로 대담하게도 학계의 권위자들에게 접근하였고, 이 물건을 본 학자들은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학자들과 관계부처의 문화재 전문 위원들은 이 엄청난 물건이 어디서 도굴되었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도굴꾼들은 처벌받지 않고 물건을 팔려고 했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복잡한 흥정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1년여 가까이 걸린 어렵고도 긴 흥정 끝에 초기 철기시대 무덤인 창원 다호리 유적이 발굴되었다. 다호리 유적처럼 초기.. 이전 1 ··· 46 47 48 49 50 다음